어느 순간부터 소위 '식빵계의 에르메스'라는 소문이 스멀스멀 들리더니, 주변에서도 한 명씩 이 전설의 식빵을 맛보았다는 사람이 등장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명성에 빗대어 제품을 홍보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혐오하기에 애써 큰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맛이 궁금하다는 와이프의 말과 우연히 지나가며 맡게 된 식빵 냄새가 무척 매혹적이라 '한 번 정도는 먹어봐도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나도 이 유행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작 식빵과 몇몇 과일잼만 파는 매장 주제에 웨이팅을 받는다고 한다. 알고보니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한 프랜차이즈라고 하는데, 다른 곳에서도 마냥 쉽게 구하진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매장이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만 문을 여는데, 여는 시간에 맞춰서 가면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멀리 있는 만큼, 9시에 나가면 여유가 있겠다 싶어서 여유있게 나가보았다. 20여 분 뒤에 도착했는데, 이미 매장 앞에 줄이 길게 늘여져 있었다. 이렇게 덥고 습한 한여름에 사람들이 '식빵' 하나 먹어보겠다고 줄을 서다니... 식빵맛이 거기서 다 거기지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다는 건지 궁금했다.
특이하게도 줄 서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였다. 내 바로 앞에 있던 아주머니께선 혼잣말로 "아이고 이 더운 날씨에 남자친구들이랑 남편들 줄 선거 보소..."라며 나지막이 읆조렸다. 나도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다들 사랑받는 남자친구, 남편되기 쉽기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9시 50분쯤이 되었을까, 안쪽에서 직원이 한 명 나오더니 어떤 식빵을 구매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자주 오지도 못할 것 같았고, 이왕 이렇게 된거 제일 시그니처 메뉴나 먹어보자는 생각에 생식빵 두 줄과 하프 사이즈 한 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위 사진에 있는 티켓을 주는데, 이 티켓이 바로 식빵 교환권이라고 한다. 조금 뒤에 있던 아저씨가 티켓을 받지 못했는지 한참 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무려 40분이나 빨리 와서 줄을 섰는데도 이렇게 인기가 많았다.
구미 도량동 화이트리에 매장 근처에는 따로 주차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근처 갓길에 대충 이중삼중으로 주차하거나, 동네 및 상가 구석구석에 아무렇게나 차를 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자칫 사고유발이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아니라다를까, 한창 기다리고 있는 중에 어떤 차가 주차중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버렸고, 차주와 이것저것 이야기 끝에 다른 곳에 주차하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줄은 다 마감이 되었고, 사고를 낸 차주는 식빵도 사지 못하고 사고도 나버린 씁쓸한 경험을 한 채로 돌아갔다.
10시가 되고도 한두사람씩만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거의 2~30분을 더 밖에서 기다렸다. 날씨가 무척 더웠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으며,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맨몸으로 무더위를 맞이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매장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매장 내 공간은 무척 협소했다. 안쪽에는 식빵을 굽는 공간이 있었고, 앞쪽에는 카운터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겨우 5~6명 내외로만 줄을 설 정도로 자리가 좁았다. 나는 빠르게 앞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매하는지 스캔하고, 어떻게 식빵을 구매해야 최선의 선택일지 고민했다.
당일 들어와있는 잼은 '딸기버터'와 '블루베리'뿐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개의 젬을 모두 구매하기로 하고, 빵 두께를 고민했다. 생식빵으로 먹는 경우, 보통 2cm로 구매한다기에 조금 두껍다고는 생각되지만 다들 이렇게 하는건 뭔가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2cm로 결정했다. 꽤 가격이 비쌌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안 살수도 없었다.(젬은 하나에 8,000원이고 식빵은 풀사이즈 11,000원, 하프사이즈 6,000원이다.)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은 (밖에서도 느꼈지만) 버터향과 풍미가 엄청나게 진했다. 마치 버터향에 그대로 취할 것 처럼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강렬하게 뿜어져나왔다. 식빵에서 이런 향이 나온다면 당연히 맛이 없을리가 없었다. 카운터 안쪽에는 포장이 된 식빵이 잔뜩 놓여져있었는데, 나중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20인분 이상 구매한다면 포장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식빵 두께는 주문할 때 이야기하고, 직원이 커터로 즉시 잘라주는 식이라서 이 과정도 은근히 오래 걸렸다. 앞서 고민한 그대로 2cm 두께의 식빵을 각각 풀 사이즈 2개, 하프 사이즈 1개 구매했고, 젬도 재고가 있는 두 종류를 함께 구매했다. 알고보니 식빵을 기계에 넣어서 자동으로 돌리는게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눌러가며 자르다보니 시간이 제법 걸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식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래는 3일 정도 실온 보관이 가능하지만, 덥고 습한 여름이라서 하루 정도만 실온에 보관하고 냉장보관 할 것을 권유받았다. 최대한 빨리 먹어야곘다고 생각헀다. 이미 매장 내 버터향에 충분히 매료 되었기 때문에 곧 집으로 돌아와 맛을 볼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흔히 먹는 포슬포슬한 식빵 느낌이 아니라, 상당히 보들보들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준다. 보통 식빵에는 딸기젬을 발라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화이트리에 같은 경우에는 뭘 발라 먹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서 충분히 맡은 버텨향이 가득하여 먹을 수록 입에 고스란히 배여있고, 식감도 무척 훌륭해서 입에 씹히는 감촉과 부드러운 목넘김 등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빵을 먹을 때 커피를 먹지 않으면 범죄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오로지 식빵에만 오롯이 몰입하여 먹는 것이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됐다.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딸내미가 어린이집 하원을 하여, 집에 와서 생식빵을 줬는데 먹자마자 눈이 띠용~하더니 순식간에 한 개를 해치웠다. 평소 편식이 심한 아이라 과연 이걸 잘 먹을지 고민됐었는데, 이내 두 개째를 요구하더니 말그대로 두 개까지 순삭해버렸다.(덕분에 이날 저녁은 빵으로 간단하게 떼웠다.) 평소에는 "아빠 아~"하면 자기가 먹던 것을 조금이라도 떼어주기도 했는데, 식빵맛이 입에 잘 맞았는지 달라고 하자 짜증을 내면서 금세 도망가버렸다. 그만큼 아이가 먹기에도 부담없고 맛있는 식빵이었다.
우선 첫날은 아무 것도 바르지 않고 식빵만 먹어보았고, 다음 날부터는 냉장고에 들어가야 되니 이때부터 젬을 발라 먹어보기로 했다. 화이트리에 잼은 우리 흔히 접할 수 있는 딸기젬보다 슴슴했다. 하지만 특유의 감칠맛이 있어서 자극적이지 않고 질리지 않아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젬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래 보관하기보단 빨리 먹어야겠다는 인상을 받았다.(사실 크기가 작아서 오래 보관할만큼의 양도 아니다.)
총평을 하자면, 식빵 자체의 퀄리티도 높고, 맛도 훌륭하며, 매장에서도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충분히 받는다. 만약 와이프나 딸내미가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하면 한 시간 정도 또 기다릴 의향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오래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도 들기에, 조금 유행이 빠진다면 충분히 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가끔씩 사먹을 정도는 되는 양질의 빵이라고 생각된다.
* 주소: 경북 구미시 야은로 309 1층 103호